서양 세력 접근
18세기 후반,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했고,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확립되었다.
물자가 많아지고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며 공장이 생겼다.
과잉공급 | 새로운 시장 개척 | 값싼 원료 공급지 | 배의 침략 | 식민지 개척 | 제국주의 |
가격 인하 |
19세기 말,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.
아편 전쟁
(1) 초기 무역(17~18세기): 광저우항만 개항
▶ 영국은 청에서 차, 비단, 도자기 수입 → 영국의 적자
▶ 영국이 인도의 아편을 청에 판매, 청의 은 유출 → 청의 적자
(2) 제1차 아편 전쟁(1840~1842)
배경: 은 유출 및 아편 중독자로 청 정부가 아편을 단속
과정: 영국 승, 청 패배
결과: 난징 조약 체결(5개 항구 개방, 홍콩 넘김, 최초의 근대적·불평등 조약)
(3) 제2차 아편 전쟁(1856~1860)
배경: 영국의 무역 확대 요구를 청이 거절, 애로호 사건, 프랑스 선교사 피살 사건
과정: 영국과 프랑스 승, 청 패배
결과: 톈진 조약과 베이징 조약 체결, 항구 개항
※ <애로호 사건> 청나라 관리가 중국인 해적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영국 국기를 내린 사건
(4) 미일 화친 조약(1854)
네덜란드와 청 상인에게만 무역 허락 → 페리 제독의 무력시위 → 미일 화친 조약
(5) 미일 수호 통상 조약(1858)
- 18세기 이후, 한반도 해안에 이양선이 출몰
- 19세기, 서양 열강이 통상 요구
- 청이 아편 전쟁 패배한 후, 사회적 불안감 확산
통치 체제 재정비
- 대내적: 삼정의 문란 ▶ 농민 봉기
- 대외적: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
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
- 안동 김씨 인물들을 몰아냄, 당파 관계없이 인재 등용 ▶ 왕권 강화
- 비변사 폐지 ▶ 왕권 제약 제거
-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 부활 ▶ 권력 독점 견제
- 『대전회통』, 『육전조례』 등 법전 편찬 ▶ 통치 체제 재정비
- 수군 강화, 신무기 제조
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
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
- 원납전 기부금 강제 징수
- 통행세 부과
- 당백전 발행 ▶ 물가 상승
- 토목 공사에 백성을 동원
- 목재 부족 ▶ 양반의 묘지림 벌목
이후 전국의 서원 47개소만 남기고 모두 철폐
- 국가 재정이 늘어남, 민생이 안정됨
- 양반들 반발 ▶ 물러나는 배경 중 하나가 됨
<삼정 개혁>
- 전정 → 양전 사업으로 토지 조사
- 군정 → 호포제(신분 관계 없이 군포를 냄)
- 환곡 → 사창제(민간에서 곡식 저장, 관리의 부정 감소)
- 국가 기강 확립, 민생 안정에 기여
- 전제 왕권의 강화를 목표로 추진하였다는 한계
서구 침략
(1) 병인박해(1866): 흥선 대원군의 프랑스 교섭 계획 실패 →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 처형
(2) 병인양요(1866): 병인박해 → 프랑스의 문호 개방 요구, 강화도 공격 → 한성근(문수산성), 양현수(정족산성) 부대의 활약
프랑스군의 퇴각, 강화도 주요 시설 파괴와 외규 장각 의궤 약탈
(3) 오페르트 도굴사건(1868):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 도굴 시도 → 실패
(4) 신미양요(1871): 제네럴 셔먼호 사건 → 강화도 침략 → 미군 퇴각
(5) 통상 수교 거부 정책, 척화비 → 서양 세력 침략 지연 ≒ 근대화 지연
중국의 근대화 운동
(1) 태평천국 운동: 개항 이후, 외국 상품 수입 증가 → 농민 세금 부담 증가 → 태평천국 운동 → 진압 과정에서 서양 무기의 우수성 인식
(2) 양무운동: 근대화 정책 추진
- 서양식 무기 도입
- 군수 공장 설립
- 철도, 통신 등 산업 육성
- 외국에 유학생을 보내 선진 문물을 배움
→ 지역별 추진: 통일성 X, 근본적 개혁 X, 서양 기술만 수집
일본의 메이지 유신
(1) 존왕양이 운동: 개항 이후, 값싼 외국 면직물 증가 → 전통 수공업 피해 & 물가 상승 → 존왕양이 운동 → 새 정부 수립
(2) 메이지 유신: 메이지 정부의 '부국강병과 문명개화' → 근대 개혁 추진
- 중앙 집권적 입헌 군주제
- 봉건제 & 신분제 폐지 + 징병제 채택
- 납세 의무 + 소학교 의무 교육
- 근대 사업 육성 + 철도(근대 시설물)
- 이와쿠라 사절단 파견 → 불평등 조약 개정 & 근대 문물 도입
조선의 개국 통상론 대두
개국 통상론: '문호를 개방하고 서양과 통상해야 한다' <박규수, 오경석, 유홍기, 김옥균, 박영효, 김윤식>
- 박규수: 청을 왕래하며 서양 기술의 우수성을 경험
- 오경석: 청의 『해국도지』, 『영환지략』을 국내로 들여옴
- 김옥균: 개화파 세력 형성
조선 개항
(1) 운요호 사건(1875): 일본이 예고 없이 운요호를 강화도에 보냄 → 수비대의 포격 → 영종도 상륙 & 살상
(2) 강화도 조약(조일 수호 조규)(1876): 조선 최초의 근대적·불평등 조약
- 조선은 자주국임을 명시
- 부산, 원산, 인천 항구 개항
- 연안 측량권
- 영사 재판권(치외 법권) 인정
(3) 부속 조약 - 조일 수호 조규 부록
- 거류지 설정
- 일본 화폐 유통 허용
(4) 부속 조약 - 조일 무역 규칙
- 수출입 상품에 대한 관세 X
- 일본 선박 항세 X
- 곡물 유출 제한 X
(5) 조미 수호 통상 조약: 청은 조선에 일본 견제를 위해 미국과 수교할 것을 권함 & 김홍집이 『조선책략』을 가져옴 → 미국과의 수교
- 거중 조정: 조약에 관한 분쟁 시 미국 개입
- 관세 부과 조항
- 미국을 최혜국 대우
- 영사 재판권(치외 법권) 인정
-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- 청은 조선의 종주국임을 명시
- 이후 영국, 독일, 러시아 등과 조약을 맺음
개화 정책
(1) 1차 수신사 김기수 일행(1876): 일본의 근대 시설 시찰
(2) 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(1880): 조약 개정 → 실패, 일본의 발전상 확인
(3) 근대화 정책
- 통리기무아문 설치: 개화 정책 총괄
- 군사 제도 개편: 5군영 → 2영(무위영·장어영) 통합
- 신식 군대: 별기군(교련병대) 창설 → 일본인 교관
(4) 시찰단
- 조사 시찰단: 일본의 제도, 법률, 공장 등을 조사 <박정양, 어윤중, 홍영식>
- 영선사: 청에서 무기, 화약, 기계 제조법을 배움 <김윤식>
- 임오군란 → 기기창(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) 설치
- 답례 사절단: 미국 근대 시설 확인
위정척사 운동
- (1860) 서구 열강의 무력 통상 요구 → 이항로, 기정진 - 척화 주전론:통상 수교 거부 정책 지지
- (1870) 강화도 조약 체결 → 최익현 - 왜양일체론: 일본의 개항 요구 반대
- (1880) 『조선책략』 → 이만손 - 만인소: 미국 수교 반대
반외세, 반침략 성격 → 항일 의병 운동으로 이어짐
임오군란(1882)
개화 정책 추진
- 도시 하층민: 정부의 재정 지출 증가 → 세금 부담 증가 & 일본으로 곡물 수출 → 쌀값 증가
- 구식 군대: 신식 군대에 비해 낮은 대우 & 13개월 급료 X, 1개월치 급료, 쌀+모래+겨
▶ 개화 정책 반대
구식 군대 군인 + 흥선 대원군 + 도시 하층민
- 정부 고관(민씨) 집 공격
- 일본인 교관 살해
- 일본 공사관 공격
- 창덕궁 공격
- 민씨 일파 처단
흥선 대원군 권력 장악, 개화 정책 중단, 청이 흥선 대원군을 감금
내정 간섭
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
- 양화진, 한성 개방 → 경제적 침투
- 마건상, 묄렌도르프 고문 파견 → 내정 간섭
일본의 제물포 조약
- 조선이 배상금 지급
- 일본 공사관 호위 - 일본군 한성 주둔
개화파의 분파
개화파: 조선의 근대화
- 온건 개화파: 친청 → 동도서기론(유교 질서를 지키며 서양의 과학 기술을 수용)
<김윤식, 김홍집, 어윤중> - 급진 개화파: 친일 → 문명개화론(서양의 기술, 사상, 제도까지 수용)
<김옥균, 박영효, 홍영식>
- 박문국 설치: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(한성순보) 발간
- 도로 정비, 경찰·우편 제도 도입
청의 내정 간섭 + 민씨 정권의 친청 정책 → 개화 정책 실패
민씨 정권의 당오전 발행 시도 → 김옥균의 일본 차관 도입 시도 → 실패
갑신정변(1884)
청이 베트남 문제로 프랑스와 전쟁 조짐 → 조선에 주둔한 청군 철수 → 급진 개화파에 일본이 지원 약속
우정총국의 개국 축하연 → 민씨 세력 핵심 인물 제거 → 개화당 정부 구성
- 청에 대한 사대관계 청산
- 내각 제도 수립
- 문벌 폐지 → 인민 평등권
- 지조법 개혁
- 호조 재정 일원화
▶ 근대적 국민 국가 목표 → 실패: 청의 진압(3일 천하) → <박영효, 서광범, 서재필, 김옥균> 일본으로 망명
- 한성 조약: 일본에게 배상금 + 공사관 신축비 부담
- 톈진 조약: 청과 일본 양국 군대 철수, 조선 군대 파병 시 서로에게 통고
자주독립 정책
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짐 → 러시아와 우호 관계를 강화 →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→ 항의 후 2년 뒤 물러감
고종 - 자주적 개화 정책
- 내무부: 군사, 재정, 외교
- 박문국: 한성주보 간행
- 전환국: 화폐 주조 기관
- 전운국: 조세곡 운반
- 육영 공원, 연무 공원 등 설립 → 외국인 교사와 군사 교관 초빙
▶ 농민의 조세 부담 증가
동학 농민 운동
(1) 동학 농민 운동: 개항 이후, 영국산 면직물이 싼값에 들어옴 & 일본 곡물 수출 증가로 가격 상승 → 농민 세금 부담 증가
(2) 2대 교주 최시형(1880): 포접제의 조직망 정비 → 동학 탄압
(3) 교조 신원 운동(1892):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포교의 자유를 요구
(4) 외세 배척 운동(1893) → 정치적인 성격
고부 농민 봉기
(1)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부정부패
(2) 전봉준의 봉기: 고부 관아 습격, 조병갑 도주
(3)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풀어줌, 곡식 나눔,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를 허뭄, 부패한 향리들을 붙잡음
(4) 정부가 새로운 군수 임명
(5) 장흥 부사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체포
→ 농민들의 분노 증가
제1차 봉기
(1) 전봉준 + 손화중 봉기: 고부 점령, 농민군 조직 확대
(2) 황토현 → 관군 격파, 전라도 서남 점령
(3) 황룡촌 → 정부군 격파, 전주성 점령
(4) 정부가 청에 원군 요청 → 일본도 원군 파견 → 농민군 해산
(5) 농민군과 정부군: 폐정 개혁안 제시 → 전주 화약 → 집강소(자치적 개혁 기구) 설치 → 개혁안 실천
청일 전쟁
(1) 청의 청일 양국 철병 요구, 일본 거부
(2) 일본의 조선 내정 개혁 제의, 청 거부
(3) 청일 전쟁: 일본이 경복궁 점령, 청군 공격
(4) 일본 승, 청 패배 →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→ 랴오둥반도, 타이완 등 할양 & 배상금 지불
(5) 삼국 간섭: 러시아 + 프랑스 + 독일 → 일본 압박 → 랴오둥반도 반환 & 보상금 획득
제2차 봉기
(1) 일본군 + 정부군의 농민군 진압 준비 → 농민군 재봉기
(2) 손병희의 북접군 + 전봉준의 남접군 → 논산 합류, 공주 진격 → 패배
(3) 전봉준, 김개남, 손화중 등 체포 / 처형
의의: 반봉건적 성격, 반침략적 성격, 갑오개혁에 일부 반영
제1차 개혁(갑오개혁)
일본이 경복궁을 점령, 흥선 대원군 + 김홍집 → 새 정권 수립
- [정치]
- 중국의 연호 대신 개국 기년 사용
- 궁내부 설치 → 의정부: 정치, 궁내부: 왕실 업무
- 의정부의 6조를 8아문으로 개편
- 경무청 중심 경찰 제도 도입
- 사간부(언론 기관) 제거 + 과거제 폐지
- 토지, 산림, 광산을 외국인 매매 금지 (단, 일본에게는 경부선 부설권을 넘김)
- [경제]
- 재정 일원화: 탁지아문
- 조세 항목을 지세, 호세로 통합 → 조세 급납제 시행
- 은본위 화폐 제도
- 도량형 통일
- [사회]
- 노비제 폐지 → 신분제 폐지
- 조혼 금지
- 과부의 재가 허용
- 참형, 고문, 연좌제 폐지
- 공문서에 국문 / 국한문 사용
제2차 개혁(갑오개혁)
일본이 청일전쟁 승기를 잡음 → 흥선 대원군을 물러나게함 + 김홍집과 박영효 연립 내각
▶ 군국기무처 폐지
▶ 고종이 종묘에서 자주독립 맹세, 홍범 14조 반포
- [정치]
- 국왕 중심 → 내각(=의정부) 중심
- 중앙: 내각의 8아문을 7부로 개편
- 지방: 8도 - 23부 - 군
- 기존 군사 조직 폐지, 중앙에 훈련대, 궁궐 호위에 시위대
- 재판소 설치로 재판권 단일화
- [경제]
- 근대적 예산 제도 도입
- 관세사, 징세서 (조세 징수 업무)
- 육의전 폐지
- 상리국(보부상의 독점 상업권을 보장) 제거
- [사회]
- 교육입국 조서 반포
- 한성 사범 학교 관제, 소학교 관제, 외국어 학교 관제
명성 황후 피살
(1) 고종 + 명성황후 → 일본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함
(2) 박영효: 명성 황후 폐위 음모 → 일본 망명
(3) 박정양, 이완용 등 친러, 친미적인 인물로 내각 구성
(4) 일본이 미우라 고로 파견: 일본군 수비대 + 낭인 + 해산당한 훈련대 → 명성 황후 살해(을미사변, 1895)
제3차 개혁(을미개혁)
김홍집, 유길준 등 친일적인 인물로 내각 구성
- 훈련대 해산 → 중앙에 친위대, 지방에 진위대 신설
- 국호를 '대조선 제국', 대군주를 '황제'로 → 열강의 반대로 실패
- 태양력 사용
- 건양 연호 사용
- 종두법 실시(천연두 예방)
- 우편 사무 재실시
- 단발령 실시
의병 반발 →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(아관 파천, 1896) → 개혁 주도 세력 제거, 일부 관료가 일본으로 망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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